[경향신문]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야경. 아시아문화전당 제공사람의 향기가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아무데도 못 가고 아무도 못 만나는 감염병의 시대에도 시간은 흘러 어느새 한해의 끝자락. 누군가 붙잡고 울적한 마음을 토로하고픈 이맘때는 도시 여행이 제격이다. 거리 곳곳을 쏘다니다 보면 한갓진 곳보다 오히려 복잡한 도시가 마음의 허전함을 달래주는 재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어쩌다보니 광주에 다녀왔다. 무거운 역사에 눌려 여행지로는 제쳐놨던 곳이다.새삼스럽지만 광주는 멀지 않다. 서울에서 가면 KTX로 두 시간 이내면 닿는다. 아침 일찍 출발하면 당일치기 여행이 가능하다. 시내 주요 명소가 지하철역과 가까워 차 없이 다니기도 편하다. 그럼에도 심리적으로는 멀다. 광주 하면 5·18 항쟁이 떠올라 특정 목적없이 광주에 와도 된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도시 여행의 콘셉트는 ‘예술 여행’이다. 광주는 누가 뭐래도 ‘예술의 도시’ 아닌가. 비엔날레의 도시 광주에는 색다르게 즐길 숨은 여행지가 많다. 미리 말하면 그동안 미처 몰랐던 광주의 ‘어떤 것’들에 빠져 ‘좋아요’를 연거푸 누르고 싶었다.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그 도시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일은 언제나 매력적이다.#여기만 가도 절반은 ‘성공’광주 여행의 중심은 구(舊)도심인 동구다. 동구에는 ‘광주의 명동’으로 불리는 충장로가 있고, 5·18 때 시민군의 최후 항전지였던 옛 전남도청이 있는 금남로도 있다. 문화와 상권이 동구를 중심으로 발달했다. 충장로의 옛 광주우체국(현 충장로우체국)은 한때 ‘우다방’으로 불렸다. 약속 장소가 적당치 않았던 시절 냉난방 시설이 있는 우체국을 시민들이 약속 장소로 즐겨 이용하면서 붙은 애칭이다. 최근엔 방탄소년단의 제이홉. 수지 등 광주 출신 스타들이 활동했던 충장로 옛 학생회관 뒷골목에‘K-POP 스타의 거리’가 생겨났다. 현재 옛 도청 일대에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들어섰다. 구도심 여행의 출발지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을 삼았다. 아시아문화전당은 광주 지하철 문화전당역 5·6번 출구에서 바로 연결된다. 2015년 개관한 아시아문화전당은 복합문화공간으로 그 규모가 상당하다. 연면적 16만1000㎡으로 아시아 최대 규모의 문화예술기관이라고 한다. 옛 전남도청 일대를 지하로 파서 건립됐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전경. 동구 제공아시아문화전당은 민주평화교류원과 어린이문화원, 문화정보원, 문화창조원, 예술극장 등 5개 공간으로 나뉜다. 옛 도청과 경찰청을 활용한 민주평화교류원을 제외하고 모두 지하에 뒀지만, 채광이 좋아 실내에 들어가도 답답하지 않다. 건물 지붕에 70여 개의 채광정이 설치됐기 때문이다. 채광정은 낮에는 햇살을 지하까지 받아들이고 밤에는 은은한 불빛을 뿜어낸다. 그래도 지하에 건립된 문화전당이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계속 받으면서 최근 지상에서 지하 3층 문화창조원을 잇는 외부 에스컬레이터 공사를 마쳤다. 아시아문화전당은 수준 높은 전시와 공연이 1년 내내 열린다. 현재 문화창조원 복합 3·4관에서는 ‘포스트휴먼 앙상블’ 전시가 열리고 있다. ‘탈인간중심주의’를 의미하는 ‘포스트휴먼(Posthuman)’과 개체들이 모여 함께 조화를 이룬다는 ‘앙상블 (Ensemble)’로 이루어진 전시는 전시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간이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이 아닌 개체들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에 대한 고찰이다. 자연의 반격으로 야기된 팬데믹을 겪으면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고민을 해보는 자리로 돌아볼만 하다. 전시는 내년 2월27일까지이며 관람은 무료이다. 아이와 함께 길을 나섰다면 어린이문화원에 꼭 들러보길 권한다. 어린이문화원은 어린이극장과 도서관, 체험관 등으로 구성돼 있다. 도서관에선 어린이 눈높이에 맞는 다양한 책을 열람할 수 있다. 체험관 이용은 인터넷에서 프로그램을 예약하면 된다. 이용요금은 만 4세∼14세 미만은 5000원, 만 14세 이상은 3000원이다. 어린이문화원 운영 시간은 월요일을 제외하고 오전 10시∼오후 6시다.해설사가 동행하는 ACC 투어에 참가하면 아시아문화전당을 더 알차게 관람할 수 있다. 하루에 6회(수·토요일 7회) 무료 운영하며, 홈페이지에서 예약하거나 방문자센터에서 현장 접수한다. 아시아문화전당은 매주 월요일과 1월1일 휴관한다.아시아문화전당에는 추천할 만한 장소가 하나 더 있다. 문화정보원의 라이브러리 파크다. 라이브러리 파크는 상영관, 북 라운지, 전시실, 커뮤니티 룸, 휴게공간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용자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대나무숲’ 등 공간이 쾌적하다. 편안하게 누워서 쉴 수 있는 소파도 있으니 찾아 보시라. 이용객도 거의 없으니 지친 여행자에게는 그야말로 최고의 공간이다. 아시아문화전당에서 밖으로 나오면 옛 전남경찰청 건물에서 아시아문화광장으로 이어지는 곳에 바둑판 모양의 ‘미디어 월’(Media Wall)이 걸려 있다. 미디어 월은 옛 경찰청 후면에 설치된 가로 75m, 세로 16m 규모의 구조물이다. 그 안에 대형 LED 스크린이 설치돼 있어 미디어아트 작품 전시와 각종 공연 안내 등을 하는 멀티미디어 플랫폼이다. 헌데 이 미디어 월은 옛 도청 복원 계획과 맞물려 2022년까지 철거될 예정이라고 한다. 미디어월을 굳이 철거하고 옛 도청을 항쟁 당시의 ‘사실 그대로’ 기록하는 역사 기념관으로만 기억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다. 아시아문화전당 앞 5·18민주광장 시계탑에서 매일 5시18분 ‘님을 위한 행진곡’ 차임벨이 흘러나온다는 데 방문한 날에는 시간을 맞추지 못해 듣지 못했다. 시계탑은 1980년대 중반 군부에 의해 옮겨졌다 2015년 제자리를 찾았다.#일상으로 들어온 예술 ‘폴리’도시를 제대로 보겠다면 걸어야 한다. 광주의 구도심을 걷다 보면 뜻밖에 마주치는 다양한 예술 작품들에 놀란다. ‘폴리(folly)’라는 작품으로 주로 아시아문화전당을 중심으로 구도심 길가에 모여 있다. 멀리는 광주역과 광주톨게이트, 광주천 주변에도 있어 걷다가 이를 발견하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예술이 일상으로 들어오는 순간이라고 해야 할까. 유럽의 대저택 정원에 있는 건축물에서 유래한 폴리는‘본래의 기능을 잃고 장식적 역할을 하는 건축물’을 의미한다. 광주 폴리는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 개막을 앞두고 공공시설물을 디자인하는 프로젝트로 시작됐다. 현재 광주 폴리 프로젝트는 총 4차까지 완료됐으며 모두 31개 폴리가 있다. 광주에서는 이 폴리를 숨바꼭질하듯 하나씩 찾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색다른 예술여행을 할 수 있다. 걸으면서 작품을 감상하고 다시 다음 작품으로 가면 된다. 순서는 딱히 정해져 있지 않지만, 동구 제봉로 광주영상복합문화관에서 시작하는 게 좋다. 이 건물 6층에 광주폴리 인포센터가 있다. 그곳에서 지도와 가이드북을 받을 수 있고, 직원에게 간단한 설명도 들을 수 있다. 같은 건물 8층으로 가면 ‘뷰폴리&설치작업 “자율건축”’이라는 작품이 설치돼 있다. 한국의 건축가 문훈과 독일 미디어아트그룹리얼리티즈 유나이티드의 얀 에들러, 팀 에들러가 참여했다. 건물 엘리베이터와 뷰폴리 전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작품이 설치된 옥상에 오를 수 있다. 기둥이 회전하며 색이 바뀌는 ‘CHANGE’ 광고판 앞에 서면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광주시내 전경 감상이 가능하다. 뒤쪽 방향에서는 분홍색과 노란색 스트라이프로 장식한 구조물과 데크에서 무등산을 볼 수 있다. 광주영상복합문화관 옥상에 설치된 폴리 ‘뷰폴리&설치작업 “자율건축”’.첫번째로 뷰폴리를 봤다면 이제부터는 마음에 드는 폴리를 찾아 가면 된다. 아시아문화전당 앞 차로에 서있는 특이한 모양의 버스정류장은 프란시스코 사닌의 ‘광주사랑방’이다. 아시아문화전당 앞의 좁고 긴 땅을 활용하여 마련된 이 공간은 구 시가와 문화전당이 만나는 접점이다. 중앙로와 금남로가 만나는 금남로공원 북쪽 모서리엔 색다른 지하도 입구가 있다. 이것도 폴리다. 공원과 인도, 지하상가를 상호 유기적으로 공존하게 하는 개념이 들어간 ‘유동성 조절’(알레한드로 자에라폴로)이란 작품이다. 1973년 이전 광주 구 시청이 있던 곳에 설치된 도미니크 페로의 ‘열린공간’도 재미있다. 한국의 나무기둥이나 누각, 처마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으며, 현대 상업지역과 그 거리의 생기를 나타내기 위해 포장마차 구조를 활용했다. 이 작품 아래엔 항상 만남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인다고 한다. 길 자체를 아예 폴리로 만든 곳도 있다. 서석 초등학교 옆 ‘아이 러브 스트리트’(위니 마스)다. 이 길은 보행자 전용도로이다. 통행로 바닥에 데크와 잔디, 자갈, 우레탄, 나뭇조각 등 다른 재료로 ‘I LOVE’라는 글자를 만들고 뒤에 대형 칠판을 설치해 낙서와 그림으로 채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길 끝 노란색 계단에 오르면 작품 전체를 볼 수 있다.광주 전역에 자리잡고 있는 폴리는 다양하다. 폴리를 하루에 모두 보는 건 무리다. 보고 싶은 작품을 고르고 동선을 짜는 게 좋다. #‘신상’ 여행지 동명동광주 동구 동명동 카페 거리. 동구청 제공아시아문화전당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이용했고, 폴리도 몇 개 봤다면 잠시 쉬어갈 때다. 아시아문화전당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동명동 카페거리는 요즘 가장 ‘핫’한 곳이다. 낡은 주택을 개조한 카페와 식당 등이 문을 열면서 서울 경리단길에 빗댄‘동리단길’이라는 이름까지 붙었다. 동명동은 사실 한때 학원가로 명성을 떨쳤다. 자녀들을 데려다주는 부모들을 위해 카페가 하나둘 생겨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고 한다.골목에는 저마다 개성 있는 카페나 식당 등이 즐비하다. 잔디밭이 경사져 피크닉 장소로 이름을 얻은 전당 ‘하늘정원’도 가까워서 음료나 음식 등을 사가지고 가는 사람들도 많다. 광주 동구 동명동 피자집 ‘먼데이오프플리즈’. 인스타그램 캡처.광주 전일빌딩245 옥상에서 바라본 야경. 이명희 기자일몰 후에는 도시여행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된다. 전일빌딩245 옥상에서 바라보는 야경이 근사하다. 옥상에 오르면 아시아문화전당 등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전일빌딩을 찾을 이유는 또 있다. 전일빌딩 10층 5·18기념관에서 헬기사격을 증명하는 탄흔이 발견된 기둥 등을 둘러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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